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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_ 노기용, 이지수

사진_ 최요한

 

 

 

 

 

 

 

 

 

 

 

 

 

 

 

 

 

 

 

 

 

 

장소 비전화카페

일시 2020년 2월 27일 목요일, 28일 금요일 ( 20시 )

배우 이지수, 배우 노기용

사진가 최요한

 

 

 

 

 

 

 

# 프롤로그. 지수와 기용 _ 카페.

 

 

둘  안녕하세요.

 

기용  저는 기용입니다.

 

지수  저는 지수입니다. 

 

기용  저희는 비둘기와

 

지수  전선들입니다.

 

기용  구구구구.

 

지수  구구구구.

 

기용  이제 낭독극 <타닥타닥>을 시작하겠습니다.

 

기용  제목. 타닥타닥.

 

지수  타닥타닥.

 

기용  타닥타닥.

 

둘  타닥타닥. 타다다닥. 타닥타닥.

 

  지수와 기용이 서로 바라보다 화목난로를 쳐다본다.

  음악 IN.

  지수는 화목난로에 불을 지핀다.

  기용은 무대를 세팅한다. (나뭇가지, 나뭇잎, 빈캔, 명함 등)

  기용이 지수 옆에 앉는다.

  음악 FADE OUT.

  둘, 초를 켠다.

 

지수  저는 털 찾는 여자입니다.

 

기용  저는 집 없는 아이입니다.

 

 

 

 

 

 

 

 

 

 

 

 

#1. 첫번째 장면. 털 찾는 여자 _ 방.

 

 

여자  나는 복슬복슬한 것들을 보면 안고싶고 쓰다듬고 싶다. 겨울이 오면 산책로의 풀들도 갈색으로 변하고, 그 풀들이 복슬복슬한 털처럼 보인다. 딱딱하고 모서리진 그런 무성함말고, 부드럽고 따뜻한 무성함을 느끼고 싶다. 

 

  기용, 나뭇잎과 나뭇가지로 소리.

 

여자  자주, 꿈 속에서 산 꼭대기에 찌찌가 움직이는게 보였다. 난 단숨에 그 산으로 오르고 올랐다. 산 중턱에서 다시 산꼭대기를 보곤 했다.  “잠시만, 기다려!” 그런데 가는 도중에 들개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사납게 달려들었다. 나는 큰 나무를 등지고 사방팔방으로 달려드는 개들을 나무막대기로 쫓아냈다. 혹시나 찌찌를 공격하는 건 아닐까. 한 녀석이 다리를 물려고 할 때, 내가 발로 뻥 차버린다. 그러면 그 녀석이 고꾸라지고 다른 개들도 다 도망간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빠르게 올라갔다. 그런데 정상에 닿았을 때 신기루처럼 그 개는 찌찌가 아니었음을 알게된다. 

 

그 꿈은 아주 오래 지속 되었다.

 

“찌찌! 찌찌! “

 

서늘하게 굳어버린, 찌찌의 몸과 그리고 방안의 서늘함. 

그때에 난 헛배가 부른 듯, 부푼 몸에 속은 텅빈 공갈빵처럼 푹 꺼져버릴 것 같은 느낌을 항상 몸에 달고 다녔다.

 

사이

 

“찌찌! 찌찌! 찌찌...”

 

 나의 기억은 낡고 있다.

 

  지수, 나뭇잎과 나뭇가지로 소리.

  기용, 기타 연주. 

 

 

 

 

 

 

 

 

#2. 두번째 장면. 집 없는 아이 _ 산꼭대기.

 

 

  아이는 기타를 어깨에 메고 산정상 어느 바위 위에 서 있다. 

  아이는 산 밑의 도시를 바라본다. 가만히 바라본다.

  숨을 들이쉰다.

 

아이  나는 LH전세임대대상자. 감사하게 반지하 원룸을 구할 수 있었다. 아, 반지하! 나도! 친구가 밖에서 부르면 무릎 말고 얼굴이 보고 싶다! 그래서 집 주인에게 말했다.

 저 이사 가겠습니다.

 괜히 말했다. 두달이면 집을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서울에 집 진짜 많잖아. 나 살 집 없겠어?!

없다! 없어! 땅 위에 발 좀 딛고 살아보자! 서울에 왜 이렇게 반지하가 많은 거야! 나! 결국 반지하로 돌아가야되냐!

 

  아이의 소리가 메아리쳐 돌아온다. 아이는 가만히 듣고 있다.

  아이가 산 밑의 도시를 바라보다, 하늘을 올려다 본다.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쉰다.

  아이의 눈 앞에 화려한 무대가 펼쳐진다.

 

아이  레이디스 앤 젠틀맨! 생방송의 장점이 뭔지 아십니까. 지금 현재 뜨고 있는 핫한 신인을 당장 여기로 데리고 올 수 있다는 거죠. 지금 만날 분도 그런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온 핫한 싱어. 세계에서 가장 핫한 아티스트. 그래미에선 벌써 단독 스폐셜을 준비했다고 하죠. 레이디스 앤 젠틀맨! 슈퍼 코리안! he’s came from 반!지!하! 집 없는 아이를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홈~~~~~~ 리스!!!!!!

 

  관객들의 엄청난 환호 소리와 박수가 소리가 들린다.

 

아이  헬로 에브리원! 아임 프럼 반지하. 마이 네임 이스 홈~~리스! 

 

  전화가 온다.

  다시 산 정상.

 

아이  헬로마미나이스투미츄아임홈리스유노우?!!

 

엄마  미칫나 이게 와이라노.

 

아이  아들이 미래를 대비해서 영어 공부를 좀 하고 있다.

 

엄마  그래 할라며는 하지마라 미칫나. 니 예술을 빙자해가 엉뚱한 짓 하지 말라고 했나 안했나.

 

아이  와그라노. 와 전화했는데.

 

엄마  내가 니 친구가 와 반말이고.

 

아이  어허 와그라노.

 

엄마  어데고.

 

아이  등산.

 

엄마  등산? 니 산에서 그 지랄 하고 있나. 진짜 미칫나 이게.

 

아이  와 전화 했는데. 아들 손가락 춥다.

 

엄마  장갑을 끼야지 그라며는. 니 집은 우예됐노.

 

아이  계속 찾고 있지.

 

엄마  지금은 어디있노. 친구 가 집에 있나.

 

아이  어.

 

엄마  맞나. 반찬 보내주까.

 

아이  됐다마.

 

엄마  니 친구 가한테 진짜 잘 해라. 가가 진짜 좋은 친구다.

 

아이  내 알아서 잘 한다.

 

엄마  엥가이 잘 하긋다 이 자식아.

 

  사이

 

엄마  엄마가 그... 집을 딱 하나 해주면 좋겠는데. 미안타.

 

아이  이상한 소리 하지마라. 내 알아서 잘 한다.

 

엄마  알았다. (약간의 사이) 빨리 내리가라 춥다.

 

아이  엄마는 뭐하고 ...

 

아이  끊었나. 끊었네.

 

  아이가 끊긴 휴대폰을 본다. 휴대폰을 한참 보다가 산 밑에 도시를 바라본다.

  밑에서 보면 그렇게 거대한 것들이, 이렇게 올라와서 바라보면 왜 이렇게 작아보이는 지.

  산은 거대한 도시의 압박에서, 아이를 잠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아이는 한동안 도시를 가만히 보고 있다.

  숨을 들이쉰다.

 

아이  집 참 많다!

 

 

 

#3. 세번째 장면. 털 찾는 여자 _ 베란다.

 

 

여자  참 자주 배가 고팠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서 먹고, 밤에도 군것질을 자주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허기가 져있고, 달고 자극적인 음식들로 허기를 채웠다. 금방은 괜찮았다. 하지만 한시간정도 지나 또 허기가 찾아오면, 집에 있는 오래된 물건들을 죄다 끄집어 내어 종이박스에 넣었다. 그리고 버릴 물건과 보류할 물건들을 정리하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말라버린 디퓨져, 켜켜이 쌓인 서류, 영수증, 홍보물들. 그리고… (식물 IN ) 

 구석에서 말라 죽어버린 다육식물. 한날 다육식물을 여러종 가져왔다. 사실, 키운다기보다 방치했다. “그래, 이건 키우는 게 아니야.” 나는 찌찌에게 물든 시간을 다육식물에게 쏟았다. 한번은 다육식물 다육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식물  잘 다녀왔니…

 

여자  (헤어진 남자 다시 만난 듯) 안녕. 

 

식물  안녕.

 

여자  안녕. 

 

여자/식물  ...

 

여자  할 말 있는 것 같은데, 먼저 말해.

 

식물  ...

 

여자  먼저 말해.

 

식물  매번 그런식으로 할거니?

 

여자  (사이)

 

식물  말라 죽을 뻔 했어. 옆집 할머니 아니었으면. 

 

여자  아니 바쁘기도 했고, 너무 어렵더라고...

 

식물  나 말라 죽을 뻔 했어. 솔직히 까놓고 얘기 해봐, 그냥 가지고 싶었던 거지? 

 

여자  그건 아니고...

 

식물  예쁘고 아름다우니까… 너 그냥 가지고 싶었던 거야.

 

여자  아니야!

 

식물  예전에도 그랬어? 코틸레돈이나, 틸란드시아나, 에오니움…. 걔네들도 이런 식으로 대했어?

 

여자  왜 지난 얘기를 해? 

 

식물  너 참 딱하다. 네가 날 돌보지 못했을 때, 옆집 할머니가 와서… 나 데려가도 되냐고 물으셨을 때, 나 

좀 고민했다? 얼마나 기뻤는 지 아니? 제발 좀 데려가 주세요. 제발 데려가 주세요. 계속 쳐박혀 가지고.. 나 말라 죽을 뻔… 

 

여자  미안해.

 

식물  이렇게 할거면, 그냥 하지마. 다 때려쳐.

 

여자  (사이)

 

식물  너 모르지. 네가 현관문 닫고 나가면, 그때부터 어두워. 넌 나가서 못본 척, 없는 척, 잊은 척 하다가… 그렇게 있었다가 “아! 맞다. 집에 식물이 있었지.” 이러면서 넌 집에 와서 확인해봐. 그리고 말라 죽어 있으면 키우기 어렵다고 적당한 핑계거리 찾아서 그냥 방치하고. 그냥 쳐박아놓고. 그냥 못본척. 보기 싫은 거지. 거기서 살아남은 애들은 살아남아 줘서 고맙다고.

 

여자  (사이) 나가줘.

 

식물  난 따뜻함을 원해. 썬샤인. 그리고 적당한 수분. 그거 말고 없어. 

 

여자  그래. 맞아.

 

식물  날 돌봐. 돌보라고. 그러면 돼.

 

  식물이 여자에게 다가간다.

 

여자  아….!

 

식물  난 강인해서 살아남았지만, 그건 니가 한 일이 아니야. 내가 한 일이지. 있는 힘을 다해 뿌리 내려서, 건조한 실내공기에서 수분을 쭉쭉 빨아 들이면서, 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해. 널 기다리면서.

 

여자  내가 잘못했어!

 

식물  잘못했다고? 돌봐주지 않을거면 그냥 버려. 버리라고. 나 너 꿈 속까지가서 괴롭힐거야. 

 

여자  아 제발!

 

식물  니 머릿속에 뿌리 내릴거야!

 

여자  제발!!

 

식물  아 목 말라. 목 말라!!

 

  식물이 분무기를 꺼내서 자신에게 분무한다.

 

여자  그렇게 다육이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여자가 식물을 치운다.

 

 

 

#4. 네번째 장면. 집 없는 아이 _ 친구 집.

 

 

  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기타를 메고 있다.

 

친구  어디 갔다왔냐?

 

아이  산.

 

친구  산? (약간의 사이) 기타는 왜 들고 갔냐?

 

  아이가 냉장고에서 맥주를 하나 꺼내 벌컥벌컥 마신다.

 

아이  야. 내가 등산 하는데, 노래가 하나 딱 떠오르는 거야. 이게 뭐냐면, 정상을 향해 막 올라가는데, 다리는 엄청 아프지, 힘들지, 끝은 안보이지, 목은 마르지, 물은 없지, 올라는 가야겠지. 내가 어떡해야 겠어. 그래도 계속 가야지. 꾸역꾸역 아파도 힘들어도 참고 올라가야지. 그렇게 올라가다보면 정상은 나오겠지. 그치? 정상 딱 밟아봐야 밑으로도 내려 갈 수 있는 거고. 그런 게 인생 아니겠냐. 그래가지고 내가 딱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는데, 떠오른 노래가 있다 이거지.

 

  아이가 기타를 만지기 시작한다.

 

친구  시끄러. 안 아프냐 손가락?

 

  아이는 기타를 계속 치고 있다.

 

친구  집 알아 보러 간다는 놈이 기타 들고 등산 갔다고?

 

  아이는 친구의 말을 신경 쓰지 않는다.

 

친구  잠깐만. 잠깐만.

  

  아이가 갑자기 멈춘다.

 

친구  잠깐만. 잠깐만!

 

  사이

 

아이  너가 말 시켜 가지고 까먹었잖아.

 

친구  입 좀 닫으라고.

 

아이  왜.

 

친구  지금 음악이 중요한 게 아니야. 뭔가 너의 의식주가 해결이 되고, 니가 기타를 치는 거지. 집에 오면 기타만 치고, 집 보러 간다는 놈이 등산이나 가고. 미쳤냐? 지금 니 상황에선 아무 도움이 안된다고. 그리고 신신당부 하는데, 이 오평 남짓한 미니멀한 공간, 원룸에서 기타를 치는 건 절대 안돼. 

 

아이  왜.

 

친구  왜냐. 주변을 봐봐. 여기가 사람이 아주 많이 살아. 그래서 여기서는 니가 원하는 꿈, 뮤직은 좀 힘들겠다.

 

  아이가 살며시 기타 내려 놓는다.

 

아이  알았어.

 

친구  뭐지? 이 반응은?

 

아이  니 말대로 사람 많고, 집 많드라. 야. 나 여기서 너랑 같이 살면 안되냐?

 

친구  (약간의 사이) 안되지.

 

아이  괜찮나 보네? 고마워 친구야.

 

친구  나 혼자 살고 싶어.

 

아이  난 너랑 살고 싶어.

 

친구  나도 연애를 해야되고, 너처럼 상거지 스타일 보다는 예쁜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겠어.

 

아이  나는 어떻게 안되겠냐?

 

  친구가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다.

 

아이  너랑 안 살아. 싫어 나도. 

 

친구  고마워.

 

  사이

 

아이  야. 이 집 어떻게 구했냐.

 

친구  발품 팔았지.

 

아이  얼마.

 

친구  1000에 60.

 

아이  어? 오평 남짓한 이 미니멀한 공간이 1000에 60? 월세 어떻게 내냐.

 

친구  니가 이제 반 줘야지.

 

아이  뭐라고? 장난이지?

 

친구  장난 같냐?

 

아이  장난이 좀 심한데?

 

친구  (웃으며) 내가 너한테 뭘 받냐.

 

  친구와 아이는 짠하고 맥주를 마신다.

 

친구  그러게 더 있어도 되는데, 왜 구지 나가겠다고 집주인한테 말을 하냐.

 

아이  빨리 구해질 줄 알았지.

 

친구  으이그 인간아. 더 돌아다녀. 발품 팔면 결국 다 나와.

 

아이  그래서 계속 돌아다니고 있잖아. 근데 잘 안 되네. 처음에 반지하는 어떻게 구했나 몰라.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부동산 명함만 해도 수십개다. LH 되는 집이 이렇게 없나. 없을 수가 있나. 부동산만 가면, 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고 명함 들고 나오고. 아니 진짜 없는 건가?

 

  친구가 말 없이 맥주를 따라준다.

  아이가 마신다. 원샷.

 

아이  너무 바보 같냐?

 

친구  조금...? 근데 니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괜히 집 빼겠다고 말 한 것 같기도 하고. 나 진짜 반지하만 탈출해보자 그냥 이거였거든? 뭐 없겠어? 있겠지! 찾아보면 되지! 없어. 없어. 진짜 없어. 이렇게나 없어? 할 정도로 없어. 내가 너희 집에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 얼른 구해서 나가야지.

 

친구  그건 그렇지.

 

아이  너 오늘 되게 꼴 뵈기 싫다. 나갈거야 나도.

 

친구  아니야. 집 구할 때까지 편하게 있어. 기타만 치지 말고. 시끄러우니까.

 

  아이가 기타를 든다.

 

친구  치지말라고. 사람들 놀란다고. 여기 원룸이라고. 사람 많다고. 

 

  아이는 친구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친구  야임마. 니가 원하는 꿈. 뮤직. 여기서는 안된다고 이 친구야.

 

아이  알았어. 안 쳐.

 

  계속 친다.

 

 

 

#5. 다섯번째 장면. 털 찾는 여자 _ 방.

 

 

여자  가끔 남동생은 나에게 핀잔을 줬다. 

 

여자  찌찌~ 찌찌! 어허. 찌찌. 찌찌. 쉿! 쉿! 쉿! 찌찌. 왜 안오지? 찌찌,찌찌! 찌찌!

 

  동생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누나를 바라본다.

 

여자  왔어?

 

동생  누나.

 

  여자는 무릎을 꿇고 바닥을 기어다니고 있다.

 

동생  누나!

 

여자  응. 

 

동생  언제까지 그럴거야.

 

  여자는 한손에 무엇을 쥐고 있다.

 

동생  다 지나간 일이잖아.

 

여자  (사이) 너 왔으면 씻어.

 

동생  이제 그만해. 잊어버려.

 

여자  어떻게 잊니. 그래도 마음속에, 기억속에 있잖아.

 

동생  그만해. 이럴 시간에 나가서 일을 하던가, 운동을 하던가, 좀 건강한 일, 생산적인 일을 해.

 

여자  할거야!

 

동생  그래 해! 누나 위해서 하는 말이야!

 

여자  나를 위해서?

 

동생  (사이) 같이 사는 나는 생각 안해? 나도 미칠 것 같다.

 

여자  넌 내 마음몰라. 나를 위한건… 아니다! 됐다.

 

동생  누나 때문에 나도 지울수가 없어. 맨날 생각난다고.

 

여자  거짓말.

 

동생  덮고 좋은 일만 생각하면 되잖아. 왜 그래 진짜.

 

여자  덮기 싫으니까. 이러는 거지. 찾는거야. 기억하려고.

 

동생  일년째야.

 

여자  상관하지마. 내 인생이야.

 

  동생은 여자가 가지고 있는 핀셋을 뺏고는 선반에 올려둔다.

  여자는 지쳤는지 그러려니 한다. 방문을 가리킨다.

 

동생  뭔데.

 

여자  나가줄래? 저리로?

      

  동생은 가만히 서 있다.

  여자가 일어나 동생을 발로 차면서 나가라 한다.

 

여자  꺼져! 꺼져! 

 

동생  오우씨! 아씨! 

  

  남매는 티격태격 싸운다. 장난 하는 것 같다.

  동생이 무언가를 던진다.

  여자는 얼굴을 가린다. 맞은 척 한다.

  동생이 여자에게 다가간다.

 

여자  아! 스읍….

 

동생  거짓말.

 

여자  아….흑….

 

동생  진짜야? 에이 ... 누나. 괜찮아?

 

  여자가 동생을 한 대 때린다.

 

동생  아!

 

  여자는 일어나 방으로 간다.

  동생이 따라간다.

  여자는 이불로 온 몸을 감싼다. 이어폰을 낀다.

  동생이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다.

  동생은 그런 여자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러다 여자 옆에 있는 글귀가 쓰여진 노트를 발견한다. 

  동생은 노트를 읽는다.

 

동생  방구석에서 털을 찾네. 기억들을 더듬으며. 

 

  동생이 여자를 바라본다. 다시 노트를 본다.

 

동생  행복했던 그 시절이 만져질까. 보이지도 않는 털들이 바닥에 가라 앉아있네. 한올한올 정성스럽게 모으네. 방바닥에 붙어서.

 

  동생이 노트를 한장 넘긴다.

 

동생  겨울옷을 꺼내네. 두꺼운 코트에 박힌 털들을 하나씩 빼내네. 내 눈이 침침해. 하루 나절이 가네. 하나씩 빼는데. 생각이 나네. 천장을 바라보네. 눈물이 나네. 서랍 속에 숨겨둔 담배를 꺼내네. 창문을 열고 담배를 한모금 피우네.

 

동생  누나 담배 펴?

 

  여자는 이불을 감싸고 뒤로 돌아 눕는다.

  동생은 여자를 보다가 방을 나간다.

 

 

 

#6. 여섯번째 장면. 집 없는 아이 _ 부동산.

 

 

  아이는 집을 구하러 부동산을 돌고 있다.

 

아이  저기 혹시 전세 있나요?

 

부동산  얼마짜리요?

 

아이  그게 LH 전세 찾고 있거든요.

 

부동산  LH는 없는데.

 

아이  안녕히계세요.

 

  아이가 명함을 챙긴다. 다른 부동산.

 

아이  혹시 LH 전세 있나요?

 

부동산  LH는 없는데.

 

아이  안녕히계세요.

 

  아이가 명함을 챙긴다. 다른 부동산.

 

아이  LH 있어요?

 

부동산  LH는 없는데.

 

아이  안녕히계세요.

 

  명함 챙긴다. 다른 부동산.

 

아이  LH 있어요?

 

부동산  LH는 없는데.

 

아이  안녕히계세요.

 

  명함 챙긴다. 다른 부동산.

 

아이  LH 있어요?

 

부동산  LH는 없는데.

 

아이  안녕히계세요.

 

  명함 챙긴다. 다른 부동산.

 

아이  LH 있어요?

 

부동산  LH는 없는데.

 

아이  도대체 LH 어디 있어요?

 

부동산  LH는 없어요.

 

  사이

 

아이  안녕히계세요.

 

  아이가 명함을 챙긴다.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아이  어.

 

친구  어디야.

 

아이  집 찾고 있지.

 

친구  그래? 언제 와.

 

아이  몰라. 왜?

 

친구  아니, 오늘 여자친구가 집에 올 거 같아서. 너 오는 시간에 맞춰서 갈까 했지.

 

아이  나랑 같이 본다고?

 

친구  아니. 너 올 때 간다고. 집으로.

 

아이  그니까 나랑 같이 보자고?

 

친구  아니 병신아. 너 올 때쯤에! 우리가 집에서 나갈거라고.

 

아이  아. 그 말이야.

 

친구  언제 올거야.

 

아이  어. (사이) 좀 늦을 거 같은데? 나도 약속 있어서.

 

친구  그래? 그럼 올 때 연락해.

 

아이  알았어.

 

  아이가 전화를 끊은 후 끊긴 전화기를 바라본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본다.

  한동안 그대로 있다.

 

아이  어디가지?

 

 

 

#7. 일곱번째 장면. 털 찾는 여자 _ 거실.

 

 

여자  한올 한올 모아뒀던 찌찌의 털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오랫동안 잡고 있었던 찌찌와의 끈이 툭! 하고 끊겨버렸다. 그때 난 소리를 내면서 흐느껴 울었고,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역시 고비는 늦은 밤 자기전이었다. 어둡고 고요한 방 안에 나는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아서 눈을 깜빡깜빡 떴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그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한 밤이었다.     

 모아둔 털뭉치는 어디로 갔을까? 가벼워서 날아간 다음, 바닥에 닿고, 그 털은 진공청소기로 들어가던지 아님 창문 밖으로 날아갔겠지? 그리고... 쓰레기봉투나 나뭇가지에 걸려있겠지? 만약 쓰레기봉투에 있다면 쓰레기차에 실려서 소각장에 가게 됐겠지. 차라리 나뭇가지에 걸려있으면 좋겠다.

 

  여자가 거실에 있는 서랍과 가구들을 옮기며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고 있다.

  동생이 방에서 나와 여자를 보고 있다.

 

동생  뭐해!

 

여자  너 그거 못봤어?

 

동생  뭐.

 

여자  내가 모아뒀던거… 그거…

 

동생  뭐 말하는건데?

 

여자  찌찌…

 

동생  (사이)

 

여자  못봤어?

 

동생  뭔데? 뭐?

 

여자  털. 털뭉치. 내가 모아뒀던거.

 

동생  (사이)

 

여자  내가 내 방에 놔뒀는데, 어디 있는 지 모르겠어. 가벼워서 날아갔나?

 

동생  누나, 그걸 어떻게 찾아? 그리고 털뭉치를 왜 모아. 이상해 정말.

 

여자  (동생을 본다)

 

동생  왜? 뭐?

 

여자  너 어딨는지 알지? 

 

동생  뭐? 난 몰라 아 진짜.

 

여자  야! 똑바로 말해. 그거 어딨냐고!

 

동생  아씨! 난 몰라! 그걸 왜 찾아.

 

  동생이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여자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린다.

 

  사이

 

  여자가 긴 한숨을 내쉰다. 그러더니 헤집어 놓은 가구와 서랍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동생이 방에서 나와 그 모습을 바라본다.

 

동생  그러니까 하지 말랬잖아. 이거를 왜 옮기냐고. 이거 누나 혼자 어떻게 하는데! 아 진짜! 짜증나게! 비켜.

 

  동생이 어지러진 가구와 서랍을 정리한다.

  여자는 동생의 모습을 바라본다.

 

동생  이걸 어떻게 옮긴거야. 다 누나 같지 않잖아.

 

  동생의 핀잔은 핀잔이 아니었다. 그 시간들을 동생의 방식대로 견뎌내고 있었다.

 

동생  나도 생각나. (사이) 이렇게 우리 싸우면 찌찌가 누나 편만 들었는데. 막 월월! 월월! 하면서.

 

여자  우리 나갈때 방문 닫아두면 막 긁으면서 낑~낑~ 이랬는데.

 

동생  뭘 그렇게 했냐? 낑~낑~ 이랬지.

 

여자  복도에 인기척 들리면 웍!웍! 웍웍웍! 

 

동생  웍! 웍! 웍웍! 웍웍웍!

 

여자  (개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애교 피우던 모습, 아팠던 모습, 신경질 내는 모습 등 다양한 감정들)

 

  동생이 여자를 가만히 바라본다. 움직이지 못한다.

 

 

 

  

 

 

 

 

#8. 여덟번째 장면. 집 없는 아이 _ 공원.

 

 

  아이가 공원을 배회하고 있다. 아주 넓은 공원. 차갑고 묵직한 공기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아이  어디가지?

 

  아이는 터벅터벅 한걸음 한걸음 걷고 있다. 아이의 눈에 사람들이 보인다. 한명 두명 한명 두명. 각자의 호흡으로, 걷거나 뛰고 있는 모습을 본다. 

  아이는 잠시 멈춰 서서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 내쉰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어깨에 메어 있는 기타가 유난히 무겁다. 정말 무겁다.

  아이가 벤치 앞에 멈춘다. 양쪽 어깨가 아래로 내려 앉기 시작한다.

  아이는 몸이 스르르 녹아내리 듯 벤치에 주저 앉는다.

  아이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앞을 멍하니 바라본다.

  

  공원의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공원  안녕하세요 여러분. 좋은 하루입니다.

 

  아이의 귀에는 스피커의 소리가 다르게 들린다.

 

아이  레이디스 앤 젠틀맨. 베리 나이스 투데이.

 

공원  제가 사연 하나를 읽어드리려고 합니다. 

 

아이  그래미 어워드의 시작을 밝힐 아티스트를 소개합니다.

 

공원  공원의 소리함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신청해주셨는데요.

 

아이  수많은 팬들이 이 사람의 무대는 꼭 봐야한다고 소리를 높이고 있는데요. 

 

공원  지금 읽어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

 

아이  레이디즈 앤 젠틀맨. 소개합니다. super KOREAN. He’s came from Ban! Ji! Ha!

 

  공원의 라디오 소리 계속 들려온다.

  아이가 벤치 위에 선다.

  아이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차가운 공기가 아이를 감싼다.

  아이가 쭈뼛쭈뼛 하더니 무겁게 입을 연다.

 

아이  안녕하세요. 저희 집에 오신 걸 정말 환영합니다. 저희 집 정말 넓죠. 다들 여기가 공원이야? 아니면 누가 살아? 헷갈려 하시는 거 같은데, 여기 저희 집이에요. (사이) 제가 왜 집이라고 하는 지 모르시겠죠. 제가 왜 여기에 계속 오는 지 모르시겠죠. 여러분 뒤로 돌아서 보시면, 푸르게 서 있는 소나무 대나무 보이시죠. 옆에도 보시면, 잎은 다 떨어졌는데 굵은 나무도 있고 얇은 나무도 있어요. 그 사이로 가만히 들여다보시면 누가 지켜보고 있는 게 보일 거에요. (사이) 보여요? 잘 보시면, 나무 사이로 키 큰 하얀 아파트들 하고 주황색 벽돌 옷을 입은 다 똑같이 생긴 쌍둥이 빌라들, 나이 먹은 키 작은 주택들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 잘 보이진 않는데, 땅 밑에서 빼꼼히 고개 내밀고 있는 반지하도 있어요. 이자식이 특히 저를 꼬시듯이 계속 쳐다봐요. (사이) 제가 저 친구들한테 계속 밀려나서 여기 있는 거예요. 물론 제 욕심?도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그냥 뭔가가 계속 저를 밀치는 거에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짜증도 나고 힘도 빠지고 자신도 없어지고. 다 내 탓인 것 같고. 근데 여기는 진짜 편안하거든요. 좀 춥긴하지만. (사이) 저 이제 못하겠어요. 그냥. 진짜 딱 한번만 더 찾아보고 아무 집이나 들어갈래요. 반지하도 좋아요. 그냥 몸 편히 마음 편히 눕고 싶어요. 여기 추워요. 진짜 추워요. 저 추운 거 진짜 싫어해요. 여러분들도 혹시 좋은 집 보시거나 알고 계시면 여기 지나가시면서 꼭 한번 말씀해주세요. 꼭이요.

 

  아이, 기타를 든다.

 

소주 한 잔이 너무 하고픈데, 나는 또 집으로 가야하지.

아아 내 집은 어디있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내 친구.

친구 얼굴 보고파서 땅 위에 서고 싶어.

화초를 죽이기 싫어 땅 위에 서고 싶어.

햇빛이 내리 쬐는 것을 보고 싶어 이 땅에 서고 싶어.

 

산 위에 올라서면 보이는 건 오직 하나.

산 위에 올라서서 산 밑을 내려보자.

산 위에 올라서서 산 밑을 내려보자.

야호 야호 내 집은 어디있나.

야호 야호 내 집 저기있다.

 

 

  음악 IN

 

  지수와 기용이 각자의 초 앞에 대본을 내려 놓는다.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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